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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명 : 프란세스 콜리
>> 생년월일 : 1962. 11. 12
>> 국적 : 우루과이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드 / 포워드
>> 국제경기횟수 : 68회
>> 국제경기 득점수 : 17골

>> 소속팀

Wanderers,

River Plate

Matra Racing

Marseille

Cagliari

Torino

River plate
>> 주요 참가 대회 :
Copa America, 1983, 87, 89, 91,95
World Cup, 1986, 90


80-90년대 우루과이가 낳은 최고의 「10번」. 엔조 프란세스 콜리.
프란세스 콜리 그를 부를 때는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그라운드의 황태자, 혹은 드리블의 마술사. 그의 화려한 드리블링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고 상대팀 선수들에게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한 뛰어난 드리블링 외에도 수려한 용모를 함께 갖추고 있어 황태자란 별명이 붙었다. 현재 세계 최고의 선수로 불리우는 지네딘 지단의 어릴 적 우상이 바로 프란세스 콜리이다. 지단은 항상 그와 같은 플레이를 할려고 노력했고 너무도 존경한 나머지 자신의 아들 이름을 엔조라고까지 붙일 정도이다.

90년 월드컵에서 우루과이가 우리와 같은 조에 속해 국내팬들도 그의 플레이를 상세히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이미 2패를 안은 우리나라와 1무1패로 16강 진출이 불투명한 우루과이의 대전은 서로가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우리는 변병주와 최순호를 투톱으로 내세웠고 우루과이는 프란세스 콜리와 소사 등이 파워 있는 공격으로 우리 문전을 괴롭혔다. 게다가 우리는 후반 25분경 윤덕여가 경고 2회로 퇴장 당해 10명이 싸워야 하는 불이익까지 겹쳤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스코어는 0 : 0으로 팽팽하게 달렸다. 만일 무승부로 끝난다면 우루과이도 탈락하게 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기종료 직전 폰세카에게 결승골을 허용, 0:1로 패한 기록이 있다.

프란세스 콜리는 지방의 완더러스 라는 작은 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그 곳에서 그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다음 소속팀인 아르헨티나의 빅클럽 리버플레이트로 옮길 때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이적할 수 있었다. 그는 리버플레이트에서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84년 남미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그후 유럽으로 진출하여 프랑스의 마트라 라싱 클럽에서 3시즌을 지내며 32골을 넣었지만 팀은 그다지 좋은 업적을 이루어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같은 리그의 명문팀 마르세이유로 이적한 후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89-90 시즌 11골을 기록하였고 팀을 프랑스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기는 하였지만 다혈질적인 성격이었고 그래서 평균적으로 보면 한 팀당 2시즌을 보내고는 이적을 하였다. 마르세이유에서 이탈리아의 토리노로 옮겨 1시즌을 보낸 후 8년간의 유럽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그가 스타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아르헨티나의 리버플레이트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다시 한번 95년 남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한 후 97년까지 활약하고 은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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