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테오필로 쿠비야스(Teofilo Cubillas)

 
국적 : 페루

생년월일 : 1949년 3월 8
포지션 : 스트라이커/레프트윙


년도

클럽

1965–1973
1973–1974
1974–1977
1977–1979
1979–1983
1985–1986
1987–1988

Alianza Lima
FC Basel
FC Porto
Alianza Lima
Fort Lauderdale Strikers
Fort Lauderdale Sun
Alianza Lima


국가대표 경력 : 117게임 출장/47
주요경력 :
1970
멕시코 월드컵 5

1972
남미 올해의 선수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5

1982 스페인 월드컵 출전

페루는 남미에서 축구약소국이다. 페루가 월드컵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은 40년 만에 출전한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거둔 8강 진출이다. 약팀으로 인식되어 온 페루가 이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수가 바로 쿠비야스이다.

 

그는 14세부터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16세에 알리안자 리마에서 프로선수 데뷔하여 페루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3년 후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다. 쿠비야스가 데뷔전을 치를 때 그의 공격 파트너가 쿠비야스를 네네(아기)’라고 부른 것이 그의 애칭이 되었다.

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더욱 성장하였고, 72년에는 펠레와 자일징요 보다 먼저 남미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쿠비야스는 스위스의 FC바젤로 진출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반년을 보낸 뒤 포르투갈의 FC포르투에서 두 시즌을 보내고 친정팀인 알리안자로 복귀했다.

고국으로 복귀한 쿠비야스는 페루를 코파 아메리카 우승으로, 소속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출전한 쿠비야스는 팀은 비록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였지만,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 그야말로 마법과도 같은 골을 터트렸다. 프리킥 찬스에서 도저히 왼발로는 나오기 힘든 각도(마치 오른발로 스핀을 먹여 차듯이)의 포물선을 그리며 골을 성공시켰다. 지금도 쿠비야스라고 하면 그 장면이 가장 먼저 머리 속에 떠오른다.

82년 스페인 월드컵에도 쿠비야스는 출전하였으나, 페루는 1라운드 탈락하였고 쿠비야스도 국가대표를 은퇴하게 되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간 쿠비야스는 포트 로더데일 스트라이커 및 마이애미의 사우스 플로리다 선에서 선수생활을 하였는데, 특히 포트 로더데일 스트라이커에서는 당대 최고의 득점력을 자랑했던 독일의 게르트 뮐러와 함께 뛰면서 5년간 65골을 성공시키는 득점력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미국생활을 끝낸 후 페루로 다시 돌아와 비행기 사고로 많은 선수들을 잃은 친정팀 알리안자를 위해 선수로서의 마지막 정열과 헌신을 보여주었고, 40세에 은퇴를 하게 되는데 그가 알리안자에서 뛰며 기록한 골을 모두 합하면 무려 259골이나 된다.

 

쿠비야스는 부드러우면서도 즉흥적인 플레이와 마법 같은 왼발로 축구선수로서 인정을 받았고, 인간적으로도 성숙한 면모를 보여 지금도 페루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선수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 스콜스  (0) 2011.06.15
욘 달 토마손  (0) 2011.06.09
제프 마이어 (Sepp Maier)  (0) 2008.01.05
카레카 (Careca)  (0) 2007.12.11
폴·브라이트너 (Paul Breitner)  (0) 2007.12.03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