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웸블리 경기장 투어
모든 축구선수들이 동경하는 최고 권위의 웸블리 구장을 가기 위해서는 도심에서 다소 외곽에 떨어져 있어 tube를 타고 가야했다. tube에서 내려 역구내를 벗어나니 조그마한 도심이 나타났다. 먼저 웸블리 구장이 어디 있나 둘러보았다. 멀리서 바라보니 강한 햇빛은 아니었지만 해를 등지고 윤곽만이 보였다. 다소 긴장감을 느끼며 웸블리의 상징인 트윈타워를 보며 걸어갔다. 가까이 갈수록 더욱 웅장함을 드러내며 붉은 색의 커다란 정문이 굳게 닫혀져 있었다.
1923년에 지어진 웸블리는 새로운 경기장을 짓기 위해 철거공사가 한창 준비중이었다. 텅빈 경기장 관람을 하기 위해서는 다소 비싼 가격(약 2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을 지불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것이 웸블리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니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오전이라 관람객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영국인 4명과 함께 가이드를 따라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요란한 관중의 응원소리가 스피커에서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웸블리에 왔구나! 먼저 방송실과 기자실들을 둘러보고 상단 스탠드에서 경기장을 직접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실과 의료실 등을 둘러보고 선수대기실에 들어갔다. 방 벽면에 현재 잉글랜드 대표팀 유니폼이 걸려져 있었다. 베컴, 시먼, 시어러 등의 유니폼들이었다. 동행한 영국인들이 바쁘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가이드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선수대기실에서 나와 드디어 직접 운동장에 들어갈 차례였다. 가이드는 운동장으로 통하는 복도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영국인들은 왼쪽에 우리들을 오른쪽에 세웠다. 66년 웸블리 구장에서 벌어진 잉글랜드와 서독의 결승전에서 선수들이 직접 걸어 들어간 자리라고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잡고 스피커를 켰다. 그 순간 갑자기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이드는 잉글랜드와 일본의 결승전이 벌어진다며 흡사 경기장 아나운서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일본인으로 본 것이다. 간혹 일본 축구팬들이 웸블리 구장을 찾았었던 것 같았다.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했고, 즉시 가이드가 미안하다며 잉글랜드와 한국의 결승전이 벌어진다는 멘트를 한 후 경기장으로 걸어가도록 안내하였다.
웸블리는 축구전용구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관중석에서 그라운드까지 약간의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그때 한창 트랙을 제거하는 공사를 하고 있어서 우리는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고 트랙바깥부분에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제프 허스트의 공이 튕긴 자리가 어딜까 하고 골대쪽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당시의 장면을 떠 올렸다. 66년 잉글랜드 월드컵 결승전 잉글랜드와 서독의 경기에서 연장전에 터졌던 제프 허스트의 골인장면은 골인이다, 아니다 아직도 축구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제프 허스트의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떨어진 골라인 부근의 잔디가 수천만원에 팔릴 정도로 유명한 골이다. 잉글랜드가 월드컵 우승을 했던 이 웸블리 구장의 마지막 경기가 잉글랜드와 독일간의 경기였고, 그 경기에서 잉글랜드가 독일대표팀 하만의 중거리슛 한방으로 1-0패배를 기록하며 잉글랜드 감독인 케빈 키건이 감독직에서 쫓겨났고 웸블리도 77년간의 자랑스런 역사를 마감했다. 영국인들은 이 자랑스러운 경기장을 기억하기 위해 거금을 투자하여 웸블리의 조각난 잔디, 담벼락 등을 샀다.)
그때 가이드가 시상대로 올라가자고 안내를 했고, 우리는 따라 올라갔다. 가이드는 시상대에 미리 조그마한 우승 트로피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 자리는 영국여왕이 직접 66년 월드컵에서 우승 트로피를 수여한 자리라고 설명해 주면서 우리에게 우승트로피를 들고 한명씩 사진을 찍을 것을 권유했었다. 먼저 영국인들이 사진을 찍기로 하였는데 그 중의 한명이 자신의 점퍼를 벗었다. 그는 미리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노팅엄 포리스트의 유니폼이었는데 우승 트로피를 든 그의 팔에는 힘줄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무척이나 흥분된 모습이었다. 우리도 한명씩 우승트로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 때는 약간 쑥스러웠는데 지금은 그 사진이 가장 기념이 될 만한 사진이다.
사진을 찍고 난 후 다시 운동장 외부까지 구경할 수 있는 미니 열차를 타고 경기장 안팎을 둘러보았다. 스피커를 통해 운전수가 일일이 설명을 하며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경기장 관람이 모두 끝났다. 가이드는 새로이 90,000명 수용인원의 운동장이 건설될 것이라며 그때 다시 찾아오라는 인사말을 했고(그러나 요즘 건설비용이 마련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외신을 들었다), 나는 그에게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며 악수로 작별인사를 했다.
경기장에서 다시 처음 가이드를 기다렸던 대기실로 나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 관람을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우리의 정서로는 경기도 없는 경기장을 보기 위해 비싼 돈까지 주면서 기다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영국이 축구의 종주국임과 그 상징인 웸블리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장을 찾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했던 웸블리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다.
잉글랜드 대표팀 샤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