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장

효창운동장

soccerpark 2009. 6. 9. 07:59

 

 

효창운동장

 

위치 : 서울시 용산구 효창원길 84-2

개장 : 1960년 10월 12

인조잔디 설치 : 1983 8

수용인원 : 18,000

 

효창공원은 본래 효창원으로 조선 22대 왕인 정조의 장남인 문효세자와 그의 생모인 의빈 성씨, 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 및 영온공주의 묘가 있던 곳이었으나, 일제시대 문효세자와 생모의 무덤을 모두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하고 효창원을 없애 효창공원으로 만들었다.

해방 후 김구 선생은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 및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모셔 문효세자의 옛 무덤터에 안장하였고, 백범 김구 선생도 암살 뒤 이곳에 묻혔다.

하지만 백범과 사이가 좋지 않은 고 이승만 대통령이 1960년 제2회 아시안컵 축구대회 유치를 이유로 묘소 앞에 운동장을 만든 것이 바로 효창운동장이다.

효창운동장은 국내 첫 천연잔디 축구 전용구장으로 1960 10 12 개장기념 경기로 경평 OB전이 열렸고, 그 해 10 14일 제2회 아시안컵이 열려 한국이 베트남을 5-1, 이스라엘을 3-0, 자유중국을 1-0 으로 물리치고 대회 2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곧 이어 11 6일 한국과 일본의 1962년 칠레월드컵 지역예선 경기가 벌어졌는데 경기에 앞서 일본의 국가 연주와 일장기 게양이 문제가 돼 국무회의까지 열리기도 하였다.

그 뒤 잔디관리가 제대로 되질 않아 맨땅이나 마찬가지였던 운동장은 1983 6월 한국이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4강에 오른 것을 기념하여 인조잔디를 깔고 개장 기념으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를 초청해 4개국 청소년축구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동대문운동장과 잠실운동장에 밀려 주로 중고축구대회 및 대학축구 대회를 개최하며 학원축구 경기장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그 위치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효창공원 성역화 운동으로 자주 위협을 받아왔다. 최근에도 국가보훈처가 2005 8효창공원 독립공원화 조성사업을 발표하면서 2008년까지 효창운동장을 허물어 독립공원으로 조성하기로 결정했으나, 서울에서 유일하게 학원축구대회를 소화해 온 효창운동장의 대체구장 부지를 찾기가 힘드는 등 여러 이유들로 독립공원 조성사업이 취소됨으로 인해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효창공원역에서 내려 걸어가면 보이는 모습이다. 주변에 한창 공사중이다.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 바라본 효창운동장

 

 

 

 

 고교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따로 표를 팔지 않고 차량이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개방하여 놓았다.

 

 

 

 

 

 

 

 

 

 

 

 

중동고등학교와 중대부고의 경기.

중대부고의 7번 선수가 이날 본 선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뛰어난 발재간과 타고난 볼센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류의 선수들은 어릴때는 뛰어난 기량을 보이지만 정작 성인이 되어서 사그라들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선수 본인이 뛰어난 기량에 자만을 말고, 보다 시야를 넓게 보고 패스의 정확도를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따라서 축구경기를 볼 때도 TV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라운드에서 경기장 전체를 보며 패스와 경기의 흐름 등을 곰곰히 생각하며 축구를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스탠드 상단에 문이 닫힌 매점이 보인다. 예전 서울에 갓 올라와 대학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친구도 없고 갈 곳도 마땅치 않아 효창운동장에 자주 왔었다. 저 매점에서 라면도 몇 번 사먹었는데....

 

보인고등학교 대 서울체육고

 

 

 

 

 

본부석 맞은 편 스탠드에서 바라본 모습

 

 

 

 

 

 

전통의 명문 배재고와 수도전공의 경기

 

 

 

 

 

 

 

 

 

맑은 날씨에 오랜만에 축구경기를 보니 너무 기분이 상쾌했다.

효창운동장이 학원축구의 성지로 오래도록 활용될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란다.